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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과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꽁드리유 비오니에빛바랜 고택 툇마루에 앉는다.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따라 비강을 파고드는 우아하고 은은하면서도 매혹적인 향기. 마당 한편을 차지하며 탐스럽게 핀 하얀 모란의 체취는 아찔하면서도 처연합니다. ‘전설의 무희’를 목숨보다 더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해“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며 슬픔을 노래한 시인 영랑의 첫 사랑처럼.



강진 김영랑 생가



강진 김영랑 동상◆이루지 못한 시인의 첫사랑, 모란 닮은 비오니에화이트 와인 품종 비오니에(Viognier). 한 모금 살짝 흘려보냈을 뿐인데도 크고 하얀 꽃의 이미지가 강렬합니다. 매년 5월이면 전남 강진 김영랑 생가에 피어나는 모란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을 닮았네요. 시인이 대표 작품 ‘모란이 피기 까지는’에서 찬란한 슬픔을 봄을 기다린다며 노래한 ‘모란’은 나중에 세계적인 무용가로 성장한 최승희. 스무살 청년 영랑은 2년여동안 소녀와 열애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합니다. ‘모란’을 잃고 자살까지 시도했다니 실연의 아픔이 상당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영랑이 최승희를 처음 만난 것은 1923년인데 시가 1934년 ‘문학’지에 처음 발표된 것을 보면 아주 오랫동안 시련의 아픔이 짙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 듯합니다.



모란



작약모란이 지면 작약이 피는데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클 정도로 둘 다 크기가 비슷하고 색깔도 닮아 아름다움의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습니다. 절세미인을 두고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라 불렀을 정도죠. 영랑도 최승희를 모란에 비유한 걸 보면 풋풋한 청년기에 열병을 앓을 정도로 그녀가 매혹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선덕여왕이 당 태종이 보내온 모란 그림을 보고 “나비가 없어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삼국사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실제 모란은 향기가 있어 나비도, 벌도 날아들죠. 당나라 위장(韋莊)도 백모란 향기에 반해 “入門唯覺一庭香(입문유각일정향·뜰에 들어서자 그윽한 향기 풍겨오네”라며 극찬합니다.



김영랑 생가 마당 장독대와 시비



김영랑 생가 초상◆북론 꽁드리유에서 태어난 절세가인비오니에는 와인을 잔에 따르는 순간에도 비강에 또렷하게 전해질 정도로 향이 강렬합니다. 와인을 잘 몰라도 모란이나 작약처럼 크고 우아한 꽃의 이미지가 바로 떠오를 정도죠. 여기에 잘 익은 복숭아, 살구, 배 그리고 너무 익은 느낌은 아니지만 달콤한 열대 과일향, 베르가못 같은 허브와 생강향도 느껴집니다. 또 하나. 비오니에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머스크(사향)입니다. 호불호가 좀 갈리는 향으로 일반 화이트 와인에서는 잘 느낄 수 없지만 비오니에는 코에 갖다 대는 순간 이런 머스크향이 확 올라옵니다. 입에서는 리치하고 라운드하면서 미끌미끌한 유질감과 크리미함이 도드라집니다.



꽁드리유 비오니에 아로마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꽁드리유 비오니에비오니에의 고향은 프랑스 남부 론(Rhone)의 꽁드리유(Condrieu). 론은 보르도, 부르고뉴와 함께 프랑스 3대 와인산지로 꼽히죠. 론 와인산지는 북론(Vienne∼Valence)과 남론(Montelimar∼Nimes)으로 나눕니다. 꽁드리유는 북론의 가장 유명한 화이트 와인산지. 시라 품종으로 최고의 레드 와인을 빚는 유명한 마을 꼬뜨 로띠(Cote Rotie) 바로 남쪽에 있습니다. 리용에서 남쪽으로 차로 40분 거리입니다. 꽁드리유에선 비오니에 단일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만 빚는데도 별도의 AOC를 받았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납니다. 특히 꽁드리유 남쪽 샤토 그리예(Chateau Grillet)는 3.8ha에 불과한 단일 포도밭(모노폴)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최고의 비오니에가 빚어져 1936년에 와이너리 이름이 별도 AOC로 지정됐답니다. 샤토 그리예는 1825년부터 비오니에를 생산한 유서 깊은 와이너리로 가파른 계단식 포도밭에서 아주 소량의 비오니에를 생산합니다. 10년은 충분히 숙성시킬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꽁드리유 비오니에 특징을 설명하는 백은주 한국국제소물리에협회 부회장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꽁드리유 비오니에향이 매우 좋은 꽁드리유의 비오니에는 주로 묵직한 풀바디 와인 스타일로 빚어집니다.그런데 한때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답니다. 북론은 날씨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아 주로 햇살을 많이 받는 론강 주변 경사면에서 포도가 재배됩니다. 가파른 포도밭에서 수작업으로 재배하다보니 와인 가격이 비싸지만 산도가 낮아 오래 보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강렬한 아로마에 소비자들이 반하면서 최근 다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젊은 생산자들이 신선하면서도 산도를 잘 살려 현대적인 스타일로 만드는 것도 한몫했습니다.



메종 카스텔 수석 와인메이커 세드릭 제닌 화상 인터뷰◆수제 맞춤 양복처럼 빚는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카스텔 프레르(Castel Freres)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기업으로생산량 유럽 1위, 세계 3위입니다. 1949년 피에르 카스텔(Pierre Castel)이 형제자매와 함께 설립한 카스텔 프레르는 현재 와이너리 20개를 보유하고 있고 연간 5억병을 생산하며 생산자 2500명과 파트너로 협업합니다. 대표 브랜드가 메종 카스텔(Maison Castel). 이 와이너리는 최근 1000∼4000병 정도만 소량생산하는 부띠끄 와인 세리에 리미떼(Series Limitees)를 선보였는데 대표 와인이 북부론 화이트 와인의 심장 꽁드리유 와인입니다. 수석 와인메이커 세드릭 제닌(Cedric Jenin)을 화상으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새로 론칭된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는 가자무역이 단독 수입합니다.



카스텔 프레르 와인을 설명하는 김선욱 한국지사장꽁드리유는 첫 빈티지가 2018년에 탄생했고 2019 빈티지를 제닌과 함께 시음하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코에 갖다 대자 잘 익은 배,살구, 복숭아 등 핵과일의 기분 좋은 아로마가 비강을 헤집고 들어오더니 자스민, 제비꽃 등 꽃향과 말린 과일, 베르가못향이 뒤를 따르네요. 입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먹을 때처럼 미끌미끌한 유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꽁드리유의 비오니에의 개성을 잘 표현했습니다. 요즘 꽁드리유에선 두가지 스타일로 생산됩니다.무게감 있고 풍미도 진한 전통 스타일 비오니에가 큰 축을 이루죠. 여기에 가볍고 신선한 와인을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산도가 뛰어나고 신선한 과일향이 두드러진 스타일의 비오니에도 많이 선보이고 있답니다.메종 카스텔은 여기에 새로운 스타일을 더했습니다. 바로 양쪽의 양조 스타일을 절묘하게 결합한 비오니에랍니다.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과일향·꽃향의 아로마에 상큼한 산도와 상쾌한 피니시를 더해 밸런스가 아주 뛰어난 비오니에를 창조했군요. 유질감 등 비오니에의 특징은 잘 드러나면서 무거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해 신선함을 잘 살려냈습니다.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꽁드리유 비오니에알코올 도수가 14.5%로 화이트 와인치고는 높은 편입니다. 보통 화이트 와인은 12∼13.5% 정도죠. 그럼에도 균형이 잘 잡힌 덕분에 알코올이 전혀 튀지 않는군요. 자연 효모만 사용하고 새오크는 25%로 제한합니다. 또 3개의 올드 오크를 사용해 과하지 않고 은은한 오크향을 느낄수 있습니다. 일부 포도즙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담아 15개월 숙성시킵니다. 신선함과 매력적인 산도를 구현하기 위해서죠.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양조한 와인을 블랜딩하니 밸런스가 좋을 수밖에 없네요.여기에서 포도밭을 구획별로 나눠 각각 다른 탱크에서 발효합니다. 다양한 회사의 오크통을 사용하고 오크의강도까지 세밀하게 조절한다니 마치 장인이 재단하는 수제 양복 같은 와인이네요.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랑그독 페즈나◆떼루아와 품종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한 와인“세리 리미테는 메종 카스텔 그룹이 2000년대 초반부터 기획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공들여 선보인 와인이에요. 메종 카스텔은 여러 와인 산지에 많은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어요. 그 와인 산지에서도 떼루아와 품종을 잘 표현하는 가장 프리미엄 와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랍니다. 깊이감과 신선도를 모두 잡은 와인이 가장 큰 컨셉이죠. 유럽에선 가장 큰 와인기업이지만 우리 같이 큰 기업도 1000∼4000병 정도만 소량 생산하는 부띠끄 와인을 만들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의도도 있었답니다.”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랑그독 페즈나제닌씨는 프랑스 전국의 와인 산지를 찾아다니며 세리 리미테를 개발했다는군요. 랑그독 페즈나와 지공다스를 2016년에 첫 생산했고 꽁드리유는 2018년이 첫 빈티지입니다. 메종 카스텔은 생산자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와인을 빚는다는군요.“떼루아 빈티지 특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계속 테이스팅하면서 포도가 가장 잘 익을 수 있는 시기를 생산자들과 상의해 수확시기를 결정한답니다. 포도즙을 짜고 발효하는 것을 그냥 맡겨놓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품질을 끌어 낼 때까지 계속 관리해요. 발효가 다 끝나고 나면 오크통, 스테인리스통, 올드 오크통에 넣을 포도즙을 구분해 세밀하게 관리하죠”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지공다스메종 카스텔은 꽁드리유외에도 다양한 지역에서 세리 리미떼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랑그독 페즈나(Languedoc Pezenas) 2018은 시라 65%를 베이스로 그르나슈 18%, 무르베드르 8%, 까리냥 9%를 블랜딩합니다. 품종별로 분리해서 침용하고 새오크 50%, 올드 오크 40%, 스테인리스 탱크 10% 비율로 15개월 숙성해 절제되고 우아한 오크향을 담았습니다. 블랙체리, 블루베리 등 과일향이 강하고 랑그독 특유의 허브향을 일컫는 가리그향, 흑연과 코코아, 스모키향에 시라의 특징인 은은한 후추와 매콤한 향신료가 어우러지는 파워풀한 와인입니다.



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지공다스메종 카스텔 세리 리미떼 지공다스(Gigondas) 2017은 프랑스 남부론의 9개 크뤼중 한 곳인 지공다스에서 빚는 와인으로 남론을 대표한 품종인 그르나슈 60%에 시라 40%를 섞었습니다. 역시 새오크, 중고오크, 스틸 탱크에서 골고루 15개월 숙성합니다. 신선한 야생 딸기향이 돋보이고 블랙페퍼 등 복합적인 아로마가 입안 가득 퍼지며 은은한 스모크향도 따라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