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전반기 1명당 평균 47건…15대 1천144건→20대 2만3천47건으로 12배'일하는 국회' 긍정 평가 있지만 '실적 부풀리기' 부실 입법 폐해 지적도(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김덕훈 인턴기자 = 1만4천831건.2020년 5월30일 시작한 21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전반기 마지막 날(5월 29일)까지 2년간 발의한 법률안 건수다. 같은 기간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491건이다.광복 이후 정부 수립 초기부터 권위주의 정부 시절까지는 입법 주도권을 행정부가 쥔 탓에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발의는 정부제출 법률안 숫자를 대부분 밑돌았다. 법안 발의 건수도 매 국회 임기 종료까지 수백건 수준이어서 지금과는 양적 비교가 무의미했다.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사회의 의정감시 활동이 활발해지자 의원들의 입법활동 실적에도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법률안 발의 건수는 입법활동의 성실성을 평가하는 주요 척도로 활용됐고, 의원들도 이를 의식한 듯 발의 실적 늘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그러나 '건수'만을 중요시한 나머지 현실성에 대한 구체적 검토조차 없이 개정안을 만들거나, 기존 법조문에서 단어만 살짝 고쳐 법안을 발의하는 등 '실적 부풀리기용' 입법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론의 관심이 쏠리는 현안이 생기면 너나 할 것 없이 유사한 법안을 중복 발의하는 행태도 끊이지 않는다.연합뉴스는 의원 입법의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법안 발의·처리 통계를 확인했다. 단순 실적 채우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법안, 입법의 영향에 대한 체계적 검토 없이 법안을 처리했다가 문제가 된 사례 등도 살펴보고 전문가들에게 개선 방안을 물어 3건의 기사에 담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15대 국회부터 급증…20대부터 2만건 훌쩍 넘어의원발의 법률안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15대 국회(1996~2000년)부터다. 이전까지는 많아야 500건대 수준에 머물다가 15대에서 1천144건으로 14대(321건)의 3배 이상까지 늘었다. 이후 16대 1천912건, 17대 6천387건, 18대 1만2천220건, 19대 1만6천729건, 20대 2만3천47건으로 계속 급증했다.20대 국회의 의원발의 법안은 20년 전인 15대 국회의 약 12.4배에 달한다. 현재 임기 중인 21대 전반기에도 이미 1만4천831건을 기록해 19대 전반기(9천711건)와 20대 전반기(1만2천675건)를 크게 웃돌았다. 21대는 후반기 국회가 끝날 즈음에는 3만건에 육박할 가능성도 있다.
(자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이처럼 의원들의 법안 발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1990년대 들어 시민단체와 언론 등이 법률안 발의 실적을 토대로 의원들을 평가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한 측면이 강하다.전학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민단체들이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자 의원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활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발의 건수를 늘리기 시작했다"며 "그러자 중복 발의와 같은 양상이 계속 발생하면서 의원입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의원평가 (PG)[권도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반면 정부제출 법안은 17대 국회에서 1천102건을 기록해 처음 1천건대로 올라선 이후 18대 1천693건까지 늘었다가 19대 1천93건, 20대 1천94건으로 눈에 띄는 증가세는 보이지 않는다. 21대 국회에서도 전반기 2년간 491건이 제출됐다. 법안 증가의 절대적 비중을 의원발의가 차지한다는 뜻이다.'일하는 국회'를 추구하는 관점에서 의원들의 법안 발의 증가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영역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이해충돌이 발생해 법으로 규율해야 할 대상도 늘어나는 만큼 현실 변화를 반영한 입법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다.다만 법안의 질적 수준에 대한 고민 없이 '물량 공세'에 치중하려는 의원이 적지 않다 보니 부실·졸속 입법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이는 국회 안팎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다.18대 국회 초반인 2008년 말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국회입법조사처 의뢰로 작성한 '의원입법의 절차적 합리화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는 의원발의의 폐단으로 몇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대표적 유형은 ▲ 국민 관심도가 높은 사안과 관련한 유사 법안 중복제출 ▲ 공동발의 제도를 이용한 법안 제출 실적 확보 ▲ 복잡한 정부입법 절차를 회피하고자 정부제출 법안을 의원 명의로 발의하는 '차명 입법' ▲ 집행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은 법안 ▲ 제출될 때부터 위헌 소지를 지닌 법안 등이다.당시에도 보고서는 "의원발의 법률안이 대단히 가파른 추세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법률안 증가와 관련해서는 여러 관점에서의 평가가 있지만, 이렇게 많은 법안에 대해 국회가 심의·의결 과정을 진행하기에는 앞으로 난점이 많아질 것"이라며 입법 과정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한 초선의원은 "의원발의의 급격한 증가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많다고 알고 있다"며 "의원 각자가 스스로 개별 입법기관이라 생각하고, 개개인 판단에 따라 경쟁적으로 법안을 발의하다 보니 이런 측면이 발생하는데 제도적으로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의원은 "당내 태스크포스(TF) 같은 기구를 활성화해 전문성을 띤 분야의 법안을 종합적으로 다루도록 하고, 중요 현안 대응의 집중도를 높이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 싶다"고 했다.
[연합뉴스TV 제공] 의원 292명, 2년간 평균 47건 대표발의…"중요 사안 검토 부실해질 수도"의원 발의 법안이 급증한 결과 면밀한 법안 검토가 어려워지면서 부실 법안이 그대로 시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국회 정보공개포털에서 21대 국회 전반기 본회의 법안 처리 내역을 살펴보니 작년 3월24일 하루 회의에서 165건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158건이 의원발의 법안이었다. 같은 해 12월9일 정기국회에서도 의원입법안 98건을 포함한 107건을, 2020년 12월9일에도 100건(의원입법안 94건)을 의결했다.연말 정기국회는 예산안과 각종 법안 처리가 몰리는 시기라 대체로 처리 안건이 많지만, 연중 임시회에서도 선거를 목전에 두는 등 때에 따라 법안 처리 건수가 많아지기도 한다. 작년 3월24일 본회의도 그해 4월7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열렸는데, 추경안과 함께 다수 법안을 처리했다.실질적인 법안 심의는 소관 상임위원회 단계에서 이뤄지므로 본회의에서 한꺼번에 많은 법안을 처리하는 게 문제 될 게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학계 등에서는 개별 법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에는 제출 건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한다. 상임위 단계에서도 전문위원 등 법안을 검토할 인력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전학순 교수는 "발의안이 불필요하게 많아지면 심의·토론할 안건이 늘어 의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데 장애가 크다"며 "중복 발의로 의미없는 법안이 많다 보니 인력 낭비가 심하고, 거꾸로 중요 사안에서는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데 오히려 시간이 부족해 검토가 부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TV 제공]의원 1인당 법안 제출 통계를 봐도 과연 충분한 검토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생긴다.현재 재적 중인 의원 292명이 21대 전반기 국회 마지막날까지 대표발의한 법안은 1인당 평균 47.3건이다. 2년간 한달에 평균 2건씩 발의한 셈이다. 대표발의는 아니지만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공동발의는 평균 564.9건에 달했다.100건 이상 대표발의한 의원은 15명이었고, 이 중 개별 의원 최다 발의 건수는 206건이었다. 공동발의는 1천건 이상 발의자가 27명이었고, 2천건이 넘는 법안에 이름을 올린 의원도 있었다.국회 안팎에서는 "어떤 법안에 서명했는지 의원 본인도 기억 못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제출 법안이 급증하는 데 반해 가결률은 낮아지고 있다.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이 제공하는 법률안 통계에서 원안·수정가결 건수로 가결률을 계산하면 15대 국회의 의원발의 법률안 가결률은 40%였다. 이후 16대 27%, 17대 21%, 18대 14%, 19대 14%, 20대 13%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유사 법안의 중복 발의가 많다는 지적을 고려해 '대안반영 폐기' 법안은 제외한 결과다.이처럼 가결률이 낮은 것은 의원입법 증가가 중복 발의 등으로 입법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발의안 증가는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한다는 방증이고, 발의가 급증하면 가결률 하락은 불가피한 만큼 낮은 가결률을 문제삼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양적으로 의원입법이 몇 배 증가하는데 그만큼 가결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가결률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그보다는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했을 때 법률 제·개정이 이렇게 자주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pulse@yna.co.kr[※ 글 싣는 순서]①2년간 1만4천여건…급증하는 의원발의②단어 하나만 바꿔놓고 '개정안 발의'③입법권 존중 vs 좋은 법안…균형점은나는 있던가. 정도로 주사 본부장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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