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1-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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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bx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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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 자기회복 사진치유전 '나는 간첩이 아니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이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11월 17일까지 열린다. /(주)공감아이 제공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들의 '사진치유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잠깐 불을 끄겠습니다." (민주인권기념관 해설위원)

2일 정오를 앞둔 시각,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전등이 꺼졌다. 맑은 날씨 속 복도 한 쪽에 뚫린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505호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기념관 뒤 켠 지하철 1호선 남영역을 지나는 전철 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이곳은 1979년 '삼청고정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고 김태룡 씨가 자신을 옥죈 고문실과 교도소 등 '상처와의 대면'을 갖는 사진이 전시된 공간이다. 그 옆 507호는 역시 같은 사건에 연루돼 5년간 수용 생활을 했던 누이 김순자 씨가 자신의 고향과 가족을 마주한 장면을 기록한 '원존재와의 대면' 전시 공간이다.

지난 10월 31일부터 개최된 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 자기회복 사진치유전 '나는 간첩이 아니다'의 주인공은 고 김태룡 씨 남매 외에도 1986년 재일교포 간첩 사건 피해자 강광보 씨와 최양준 씨, 울릉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 이사영 씨, 울릉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 이사영 씨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두웠던 시대 국가폭력 희생자라는 것 이외에 하나 더 있었다. 피를 나눈 가족, 정을 나눈 친구 수십 명과 한꺼번에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유신시대 간첩조작사건의 대부분은 옆 고문실에서 자식의 비명이 들리고 아버지의 사형 소식을 감옥 안에서 전해 들어야 했던 가족의 비극이었다.

삼척고정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 김순자 씨(맨 오른쪽)는 젖먹이나 다름없는 자녀들을 뒤로 하고 끌려가야 했다. 김순자 씨는 손주들을 보살피며 자녀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치유 중이다. /송주원 기자

◆삶의 터전 '바다'로 엮은 간첩 누명

1979년 8월 일가족 12명이 "6·25 전쟁 때 월북한 남파 간첩이 자신들의 친족과 접촉해 지하당을 조직하고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 김태룡 씨와 김순자 씨 남매 역시 부모와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그들의 공소장에는 "동해안 경비 상황과 군사기밀을 탐지했다"는 문구도 있었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이었던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의 발목을 잡은 건 그들을 키워낸 바다였다. 가족의 비명이 바로 옆에 들렸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거쳐 이들은 삼척 고정간첩단이 됐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권고로 2014년부터 재심이 진행됐고 2년 후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아 삼척 고정간첩단이라는 오명 뒤에 '조작사건'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었다. 12명 중 사형을 선고받고 고인이 된 2명은 이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고 김태룡 씨 남매의 아버지 고 김상회 씨 역시 형장에서 눈을 감아 무죄 선고를 보지 못했다.

어촌에 사는 가족은 간첩 굴레를 씌우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바다를 통해 북한과 교류할 수 있다는 근거 아닌 근거가 있어서다. 1980년 1월 중앙정보부는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어부로 살던 김정인 씨와 부인 한화자 씨, 어머니 박두례 씨 등 7명을 고문한 끝에 간첩 자백을 받아내 기소했다. 어장에서 일하던 김정인 씨가 북한을 들락날락하며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계를 위해 어장에서 일하는 김정인 씨를 봤다는 동료의 증언은 유신 정권의 서슬 퍼런 법봉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김정인 씨는 사형 선고를 받고 1985년 10월 형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무기징역 등 실형을 선고받은 남은 가족들은 재심으로 2009~2010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당성 확보 위해 가족을 파괴한 독재정권

가족이 간첩으로 몰린 사례를 종합하면 유달리 최소 5명 이상의 대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974년 중앙정보부는 울릉도 주민과 일본에 농업 연수를 다녀온 47명의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 기소했다. 3명 사형, 4명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나머지 시민들도 모두 실형을 살았다. 사형수 중 한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고 울릉도에서 오징어잡이 배 한척과 제2의 인생을 꿈꿨던 전영관 씨였다. 전영관 씨의 부인 김용희 씨와 친인척 4명 역시 간첩으로 몰리거나, 간첩 행위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다. 1977년 전영관 씨의 형이 집행됐고 부인 김용희 씨는 바깥에 두고 온 중학생 딸이 20대 중반이 돼서야 풀려났다. 전영관 씨가 떠난 지 38년이 지난 2015년 대법원은 남은 가족 5명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부모와 자식 등 가까운 가족부터 사촌과 외척까지 끌어 들여 간첩 누명을 씌운 이유는 당시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성훈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당시만 해도 북한에 가족을 둔 집안이 아직 많이 있었기 때문에 집안 구성원 전체를 엮어서 간첩 오명을 씌우기 쉬웠다. 없는 사건을 만들어 내려다보니 1명이 활동한 것보다 여러 명으로 구성하는 게 더 신빙성 있어 보였을 것"이라며 "애초 불안한 정권을 유지하고 국민의 관심을 안보에 돌리기 위해 의도된 조작 사건이었다. 우리 정권이 이만큼 큰 규모의 간첩을 적발했다는 '보여주기식'에 용이해 가족간첩단 조작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 간첩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 씨가 2015년 10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대법 최종 선고'를 마친 뒤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여전히 "간첩빨갱이" 낙인…재심 청구도 개인 몫

'나는 간첩이 아니다' 전시의 부제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다. 유신시대의 상처로 불리며 안타까운 과거로만 바라봤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과거의 상흔을 극복해 나가는 치유의 과정도 담았다. 전시 공간에서 만난 기획자 임종진 사진치유전문 (주)공감아이 대표는 "진실 규명 역시 중요한 일이지만 이미 언론매체에서 여러번 다뤘다. 조작사건으로 고통 받은 안타까운 대상자로 승화하기 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존엄한 인간으로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간첩조작의 토대가 됐던 진영 논리와 색깔론은 피해자의 재심이 진행되는 지금도 여전한 현실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거나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빨갱이'와 '간첩' 등으로 모는 모습은 오늘날도 낯설지 않다. 2013년 국가정보원이 서울시청에 근무하던 탈북민 공무원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아세운 사건은 불과 4년 전인 2015년 대법원에서 유 씨의 무죄를 확정하며 종결됐다. 김찬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제협력담당 과장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신념이 뚜렷하다고 해서 혐오하고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인권 측면에서도 옳지 않다"며 "이러한 분위기를 정치권력으로 이용하려는 모습도 여전하다. 시민들과 정치인 모두가 선량한 시민의 억울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식을 개선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식 뿐 아니라 억울하게 간첩 오명을 쓴 피해자들을 위한 정책 개선도 시급하다. 이날 전시에서 다룬 삼척 고정 가족간첩단 사건을 비롯해 8000여 건의 국가범죄 사건의 진상을 밝혔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 활동을 마무리한 후 여전히 남아 있는 피해자들은 개인의 힘으로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김찬호 과장은 "참여정부 때 진실화해위를 통한 전방위적 조사와 실태 파악이 이뤄졌지만 미완으로 마무리됐다. 국회에서 진실화해위 재개해야 한다는 법이 계류 중인데 통과되기에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라며 "광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자 치유센터가 2013년 설립된 걸 시작으로 제주와 부산에도 설립이 예정돼 있다. 피해자의 치유와 재활을 돕는 시스템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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