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4-16 16:16
간송의 손자 "간송의 보물, 다시는 경매에 내놓지 않겠다"
 글쓴이 : bmw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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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부터 '보화수보'전시'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보존작업 거친 작품 소개[사진 연합뉴스]최근 국보와 보물을 잇따라 경매에 내놔 논란을 불러일으킨 간송미술관의 전인건 관장이 “(간송의 보물을 경매에 내놓은 것은) 팔을 끊는 심정이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간송 전형필의 후손인 전 관장은 15일 서울 성북구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앞으로 더 활발히 소통하고 설명하겠다”고 했다. 간송미술관은 2020년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내놓은데 이어 지난 1월 국보 2점을 경매에 내놓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총액이 최소 60억원으로 추정된 삼국시대 유물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고려시대 금동삼존불감은 경매에 나왔다가 유찰됐으며 이후 블록체인 커뮤니티가 이를 사들이고 소유권의 51% 지분을 미술관에 기부했다. 2020년 경매에 출품됐던 보물도 당시 유찰됐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이 둘 다 사들였다. 전 관장은 “저희는 다른 큰 미술관과 다르게 특별한 수입원이 없다. 국보, 보물 같은 지정문화재의 경우 상속세를 내지 않지만, 지정문화재 외에 다른 유물도 많다”며 “여러 유물을 들여오는 과정 등에서 큰 지출이 있었다”고 설명했다.이어 “‘선택과 집중’에 따라 미술관의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사정이 있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다행히 현재는 상황이 안정되었고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관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오랜만이다. 수장고 신축과 등을 위해 휴관해온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 이 16일부터 7년만에 관람객을 다시 맞게 된 것. 간송미술관은 16일부터 6월 5일까지보화각 전시실에서 ‘보화수보(寶華修補)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 전시를 개최한다. 권우의 문집 『매헌선생문집』 초간본을 비롯해 ,안견의 '추림촌거', 신사임당의 '포도', 심사정의 '삼일포' 등 30점의 명화가 수록된 『해동명화집』등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유물들을 함께 선보인다.이번 전시에는 간송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문화재청의 ‘문화재 다량소장처 보존관리 지원사업’을 통해 보존 처리된 작품 중 8건 32점이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은 문화재청 지원사업을 통해 2020년부터 150건의 소장 유물을 보존 처리했다. 전 관장은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보존처리된 작품들 가운데서 향후 문화재 지정 가치가 높은 것들을 선별했다"고 말했다.그 대표작이 현재 유일본이자,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권우의 문집인 『매헌선생문집』 초간본이다. 또 안견의 '추림촌거', 신사임당의 '포도', 심사정의 '삼일포' 등 30점의 명화가 수록된 『해동명화집』이다. 이밖에 조선중기 화원화가 한시각의 '포대화상', 김홍도의 '낭원투도', 장승업의 '송하녹선' 등 지정문화재에 버금가는 명품들이 새롭게 복원된 모습으로 나온다.━1452년 초간본 『매헌선생문집』 우선 『매헌선생문집』은 여말선초 문인으로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제자이자, 정인지(鄭麟趾, 1396~1478)의 스승이었던 권우의 시문집으로 1452년 초간본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관 측은 "현존하는 조선 초기 문집이 극히 희소하여 그 존재 자체로 귀중한 문화재"라고 설명했다. ━명화들이 줄줄이 들어간 화첩해동명화집에 수록된 심사정의 '삼일포'. [사진 간송미술관]『해동명화집』에 수록된 명화 12점도 이번에 보존을 마치고 첫 공개된다. 해동명화집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화 수장가인 김광국이 수집한 우리나라 역대의 회화 작품들과 이에 대한 제사(題辭)가 함께 들어간 서화첩으로, 조선 회화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선초기 화원인 안견의 '추림촌거(秋林村居)' 부터 18세기에 활동했던 원명유의'도원춘색(桃源春色)' 등 30점의 발문(跋文)이 함께 수록돼 있다. 이 화첩에 수록된 작품의 하나로 신사임당( 1504-1551)의 '포도' 그림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안정된 구도에 짙고 옅은 먹으로 싱그럽게 익어가는 포도알의 양태를 잘 묘사했다. 잎과 줄기는 먹의 농담을 적절히 이용하여 생동감과 변화감이 풍부하다. 현재 오만원권 지폐의 앞면에 있는 포도 그림이 이 작품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민영익의 『운미난첩』민영익의 운미난첩에 그려진 난초 그림. [사진 간송미술관]또 조선말기 문인 민영익(1860〜1914)이 중국 망명시절에 그린 72점의 묵란화를 모아 놓은 화첩 『운미난첩(芸楣蘭帖)』도 함께 소개된다.민영익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학예를 계승한 문인으로, 그의 묵란화는 ‘운미란(芸楣蘭)’이라 불리우며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화원화가 한시각이 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가서 그린 '포대화상'. [사진 간송미술관]'포대화상'은 조선 중기 화원화가 한시각이 을미사행(1655년) 당시 그가 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을 갔을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현존하는 그의 ‘포대도’5건 중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작품이자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작품이다.간송미술관 측은 " 보존처리 중 '포대화상' 뒷면에 묵서를 발견했고, 판독 결과 일본 황벽종 20대 주지를 지낸 조호백순(照浩伯珣, 1695~1776)이라는 중국 귀화승이 한시각의 이름과 호, 자 등 인적 사항과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온 시점 등을 적은 내용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포대화상'이 일본에서 그려지고 전해졌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단원의 '낭원투도'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단원이 그린 도석화 중 백미로 꼽힌다. [사진 간송미술관]단원 김홍도(1745~1806)의 도석화 중 백미로 꼽히는' 낭원투도'(閬苑偸桃,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도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선도(仙桃)를 세 번이나 훔쳐 먹어 3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이란 신선이 서왕모(西王母)의 낭원(閬苑)에서 복숭아를 훔쳐 오는 장면을 그린 것. 동방삭의 얼굴을 중국풍 신선의 기형적 모습이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얼굴로 묘사했다. 단원의 도석화 중 백미(白眉)로 꼽히는 작품이다.간송미술관은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하며 소장 문화재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하여 학예연구실 내‘유물보존팀’을 설치했다. 이어 2020년부터 문화재청이 주관하는‘문화재 다량 소장처 보존관리 지원사업’을 통해 2020년부터 2년간에 걸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지류회화 수리복원연구소가 맡아 보존처리 작업을 해왔다.이번 전시가 열리는 보화각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지어진 건물이다.이번 전시를 끝으로 보수 정비에 들어간다. 전시제목 '보화수보'는 ‘보배로운 정화(精華)’란 의미의 보화, 보존 처리의 옛말인 '수보'를 합친 것. 보화는 선조들이 남긴 귀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재를 뜻하고, ‘수보(修補)’란 ‘낡은 것을 고치고 덜 갖춘 곳을 기우다’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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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위(胃)로 전진한다'라는 말이 있듯 잘 먹지 못하는 병력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 아직까지 쓰이는 병조림 및 통조림 또한 군수 식량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 개발되었듯, 전쟁은 식료품 관련 기술을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빠른 평화적 해결을 기원하며 현대 전투식량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브로바리 인근 전선에서 전투식량이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브로바리=AP 연합뉴스미군의 전투식량: 소고기와 콩에서 MRE의 탄생까지 미군의 전투식량인 '즉석 휴대 식량(MRE)'. 출처 위키피디아통조림과 병조림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개발되었지만, 이후 전투식량의 역사는 미국이 꽉 잡고 있다. 아무래도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등을 통해 세계 경찰로서 입지를 굳힌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본격적으로 완전 조리된 식품을 장병들에게 보급해 온 바, 미 국방부에서는 단순히 영양의 균형이 잡힌 식단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적합한 전투식량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양한 환경에서 차출된 병력이 때로 아주 긴 기간 동안 작전에 투입된 상황에서도 먹을 만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어야만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은 위로 전진한다는 문구를 인용했듯 식량이 다양하면 할수록 모든 장병이 잘 먹고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분을 함유한 음식으로 이루어진 통조림은 보급의 차원에서도 별도의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거나, 투입하더라도 무거워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벼운 대안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1963년, 미 국방부에서는 '즉석 휴대 식량(MRE)'의 개발에 착수했다. MRE는 좀 더 현대적인 식품 가공 및 포장 기술을 활용해 이전 세대 전투식량인 MCI(개인 전투식량)의 대체를 목표로 삼았다. 3년 뒤인 1966년, 첫 결실인 LRP가 등장했다. 탈수 식품을 방수 캔버스천 주머니에 담은 이 배급식량은 단점이 많았다. 기존의 통조림 식량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보존성이 떨어져 작전에 효율적으로 투입되지 못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인 등의 대피 작전을 돕기 위해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배치된 미국 해병대원이 지난해 8월, 한 아프간 어린이에게 전투식량을 건네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미군의 전투식량인 '즉석 휴대 식량(MRE)'. MRE는 24가지의 주요리에 150가지 이상의 곁들이로 구성되어 있다. 위키피디아초기 MRE의 개발은 압둘 라만 박사에 의해 동결 건조 및 탈수 식품의 활용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곧 비효율적으로 밝혀졌다. 가볍고 보존성은 좋을지 몰라도 물을 반드시 보급해야만 하며 포장을 뜯어 바로 먹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네이틱 군수 연구소의 라우노 A. 램피 박사가 다른 방향에서 연구에 접근했다. 유통기한이 3~10년에 이르는 완전 조리 음식을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수송 및 보급도 훨씬 원활할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도 포장만 뜯어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효율적일 수 없었다. 이렇게 개발된 MRE는 1981년 특별 보급품으로 편성되기 시작했고, 1986년 12가지 주요리로 구성된 일반 보급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전투식량은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1990년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도 전투식량을 데울 수 있는 발열 봉투가 개발되었다.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며 메뉴가 조금씩 다양해졌으니 1996년에는 주요리가 16가지(채식 메뉴 포함), 1997년과 1998년에는 각각 20가지와 24가지로 늘었다. 현재 MRE는 24가지의 주요리에 150가지 이상의 곁들이로 구성되어 있다. 각 끼니는 1,200칼로리이며 최대 21일 연속으로 먹을 수 있고 유통기한은 최소 3년이다. 한국군의 전투식량: K레이션의 탄생과 김치의 통조림화 1971년 12월, 6년간의 베트남전쟁 파병을 마치고 부산항 제3부두에 도착한 청룡부대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국군이 주먹밥 아닌 전투식량을 처음으로 지급받은 시기는 베트남전이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남베트남과 미군으로부터 기본 식량을 보급받았다. 쌀, 소금, 설탕, 식용유, 차는 남베트남으로부터, 전투식량은 미군으로부터 받는 여건이었다. 이 이원 보급 시스템을 통해 생존 자체에 필요한 식량은 문제없이 확보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 합의 속에는 한국군의 '지방적 욕구'를 충족하는 식량, 즉 각종 장류나 김치 등 한국 식품의 공급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한국군은 빠르게 적응해 찰기가 없는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국이나 찌개를 끓여 끼니를 해결했지만 된장과 고추장, 김치에 대한 욕구는 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파월된 간호장교가 김치를 담가주는 희생까지 치러야만 했다. 여담이지만 심지어 이런 문제는 북한군마저 겪었으니, 베트남전에 참전한 북한군은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이나 북베트남군이 담가 준 김치를 먹곤 했다.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은 통조림으로 만든 전투식량 'C-레이션(C-ration)'을 애용했다. 출처 위키피디아베트남전은 길고 무더웠으니,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연인원 32만여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열대성 기후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음식에 대한 보급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은 미군에게 한국 음식을 전투식량으로 제공해달라고 요구했고, 미군이 화답해 밥, 김치, 꽁치 통조림 등이 포함된 C-레이션이 보급됐다. 당시의 증언에 의하면, 맛은 괜찮았지만 하와이의 일본인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됐다. 김치가 한국 고유의 음식인데, 일본인이 만든 것을 그것도 군인에게 먹일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채명신은 김치 등 한국식 전투식량의 개발을 국방부에 요청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대한종합식품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 각서를 통해 상공부에 종합식품공업심의위원회 등 관계 기관을 설립한 뒤 국내 50여 개 통조림 가공업체 중 시설, 기술, 경영 능력 등을 조사해 우수한 23개 업체를 후보 공장으로 선정해 설립된 회사였다. 당시 국내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통조림 생산 시설이 계속 운영되고 있었고, 광복 이후에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등의 지원으로 통조림 제조 산업이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수준은 낮을지라도 시제품 생산은 가능한 상태였다.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원들이 2004년 9월, 김치 통조림 등 전투식량으로 식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하지만 그렇다고 K레이션, 특히 김치 통조림의 개발이 원활했던 것은 아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에게 김치 통조림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군의 군납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다. 더군다나 김치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시도는 최초였으므로 참으로 부담스러운 기술적 과제였다. 추진위원회는 1966년 8월 11일, 김치 통조림 시제품 열 상자를 채명신 사령관에게 보내 미국과 현지 교섭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김치 통조림에서 시뻘건 녹물이 나와 먹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조 기술의 부족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였으니 변화가 필요했다. 결국 대한종합식품의 기술부를 외부의 전문가로 대체하고 미국 및 일본의 기술자를 고문으로 초빙하는 한편 부산에 새로운 포장시설까지 설립한 끝에 1967년 3월, 김치 통조림이 최종 시험을 통과했다. 이후 정치적인 절차를 거쳐 1968년 1월부터 K레이션이 베트남의 한국군에 공식 보급됐다.K레이션은 한국인의 기호를 고려해 K1~6까지 전부 6가지 종류로 이뤄졌다. 각 레이션은 주요 품목 11가지와 부속 품목 5개로 이뤄졌는데, 일단 주요 품목은 흰쌀밥에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쇠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소시지 조림의 반찬 열 가지였다. 한편 5가지 부속품목은 부속대, 숟가락, 판따개, 소상자, 대상자였으며 부속대는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으로 이뤄졌다. 공식 보급이 1968년부터 이뤄졌다고 했지만, 사실 주베크남 한국군은 이미 1967년 2월부터 위문품 형식으로 K레이션을 보급받고 있었다. 2010년 을지연습 기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 실국장들이 구내식당에서 전투식량과 건빵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이후 한국의 전투식량도 계속 발전했다. 1980년대부터는 영양의 균형을 고려한 국내 개발형 전투식량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고추장볶음, 통조림, 건빵 등을 자체 생산해 국군 특유의 전투식량을 구성하게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형 전투식량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국방과학연구소의 주도 아래 현재 전투용 1형의 식량이 개발됐다. 1형은 즉각 취식형 전투식량으로 현재 군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투식량이다. 한국의 전투식량은 미군을 비롯한 서양과 비교할 때 내용물이 단순하고 주식의 부피가 크다. 쌀로 대부분의 열량을 섭취하니 야전에서 유용하다. 반면 반찬과 부식의 다양성이 적고 커피믹스나 향신료, 물티슈나 정수 알약 같은 부속물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참고문헌: 논문 '베트남 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 과정 고찰', 이신재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