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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소믈리에는 전 세계 261명뿐인 '마스터 소믈리에' 중 한 사람으로, 2019년부터 미 전역에 한국 전통주를 소개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지난해 5월 6일 『미쉐린 가이드 뉴욕』 발표에서 뉴욕 지역의 한식 레스토랑 6곳이 스타를 받았다. 2012년 임정식 셰프가 ‘정식(Jungsik)’을 오픈하고 전통 장 등 한국 식재료를 응용한 창의적 음식과 세련된 서비스로 ‘한식 파인 다이닝’의 수준을 올려놓은 지 10년 만이다. 한국의 ‘정식당’, 뉴욕의 ‘정식’ 오픈 멤버로 K푸드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던 김경문(38) 소믈리에. 그는 요즘 뉴욕에서 K술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와인 강의를위해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는 김 소믈리에를 만나 우리술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방법들을 들어봤다.마스터 소믈리에, 전 세계 261명뿐 “정식을 찾은 외국 손님들이 ‘한식에 어울리는 한국술을 추천해달라’는데 대답을 못했어요. 1인분에 20만~30만원이 넘는 식사에 3000원짜리 초록병 소주를 추천할 순 없고, 다른 술은 아는 게 없고. 한식에는 한국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당연한데 그걸 모르고 있다니 한국인 소믈리에로서 창피하더라고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술을 공부했죠.” 김 소믈리에가 우리술 공부를 시작한 시점을 ‘콕’ 집어 2017년이라고 답한 건 그가 2016년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이하 MS)’ 자격을 취득한 후이기 때문이다. MS는 영국 와인주류연합회와 호텔레스토랑연합회 등이 와인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도입했다. 1969년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MS를 획득한 소믈리에는 전 세계 261명뿐. 그중 대한민국 국적으로는 김 소믈리에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MS 시험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악명 높죠. 전 세계 소믈리에들이 모두 선망하지만 총 4단계 시험을 통과해야 해서, 매년 유럽과 미국에서 한 회씩 치러지는 시험 응시자는 겨우 60명 정도에요. 최종 시험은 이론·테이스팅(시음)·서비스실기 세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고, 각각 75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최종 합격이죠. 제일 어려운 건 이론 시험이에요. 포도 품종뿐 아니라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의 지리·역사·농업·기후·문화적 특성까지 방대한 분야를 다 이해하고 외워야 하니까요. 저도 이론 시험에서만 두 번 떨어졌어요.(웃음)” 레스토랑에서 주 60~70시간 일하며 주경야독하는 3년을 보냈다고 한다. “다행히 일찍 결혼해서 아내가 그 시간을 함께 버텨줬어요.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말이죠.(웃음) 이론 시험에 떨어져 낙담하고 있으면 토닥여주고, 집에 도착해 문을 열면 언제나 6종류의 시음용 와인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죠.” 김 소믈리에는 소믈리에 자격증과 MS 자격을 취득할 때 요리학교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김 소믈리에는 임정식 세프와 미국의 유명 요리학교 CIA 동문이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바로 CIA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 포스코 직원이었던 아버지는 출장에서 보고 온 외국의 도시 이야기로 소년 김경문을 들뜨게 했다. 식품과학분야 교수였던 어머니는 미래 유망 분야로 늘 ‘음식’을 강조하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요리학교 진학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여러 식재료를 배우고 요리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와인을 공부할 때였어요. 성적도 늘 좋았죠. CIA는 일반 고객을 상대로 하는 레스토랑도 4개를 운영하는데 학생들은 요리·와인·서빙 모든 걸 실전 경험하죠. 그때 알았어요. 요리를 아무리 맛있게 해도 손님이 먹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걸. 셰프의 진심과 메시지를 담아 음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내가 좋아하는 요리·와인 모두를 종합해 전달하는 서비스 영역을 공부하고 싶어서 UNLV(네바다 주립대학)에 입학해 호텔 관련 전공을 마쳤죠.”유명 요리학교 CIA서 음식·와인 공부
김경문 소믈리에가 운영하는 우리술(woorisoul) 닷컴. 미국에서 유통중인 10여 종의 우리술에 대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사진 우리술닷컴]그는 세상에 절대미각은 없다고 했다. “미각도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거예요. 장금이가 홍시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홍시 맛이 난다’ 대답하지 못했겠죠.” 와인에서 느끼는 무지개빛 맛은 어릴 때부터 경험한 맛·향의 경험치가 색색이 녹아든 것이라는 얘기다. “싱가포르 소믈리에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시음 후 묘사되는 표현이 미국·유럽과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어요. 열대기후 지역이라 포도·블랙베리·블랙커런트 같은 과일이 흔하지 않으니까 그런 표현 대신, 트로피컬 계열 과일의 맛과 향을 묘사하더라고요. 와인의 매력은 바로 이런 거예요. 나라마다, 지역마다 스토리텔링이 달라서 몇 시간씩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죠.” 우리술도 와인처럼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다면 시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2018년 한국의 양조장들을 둘러보고, 2019년 한국 전통주 수입 업체 ‘KMS Import’를 세웠다. 현재 뉴욕을 비롯해 워싱턴DC·시애틀 등 대도시는 물론 캘리포니아주·조지아주 등 15개 주로 우리술을 유통하고 있다. “전통주는 발효를 기본으로 만들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소주는 증류주라 같은 종류의 위스키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부담이 적죠. 문제는 인지도에요. 일본 술 사케가 뉴욕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소개된 것도 불과 10~15년 전이죠.” 한국 전통주가 와인처럼 코스 음식에 자연스레 페어링 되려면 몇 가지 숙제가 남았다. 일단 소주는 도수 높은 증류주라 음식 페어링보다는 식전주용 칵테일에 활용도가 더 높다. 여러 맛의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전통주는 청주다. 그런데 짧은 유통기한 때문에 한국에서 뉴욕까지 실어 나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소믈리에는 MS를 공부할 때처럼, 우리술과 관련한 숙제들을 하나씩 즐겁게 풀어나갈 계획이다. 그런 그에게 마침 한국에서 불고 있는 전통주 열풍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386세대 이상은 전통주에 향수가 있어서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절대 고급술로는 인정하지 않죠. 막걸리 가격이 1만원이라고 하면 버럭 화를 내죠. 그런데 MZ세대에게 전통주는 ‘재밌는 경험을 선물하는 술’이에요. 만족도에 따라 높은 비용도 지불할 의향이 있죠. 덕분에 전통주 품질·포장·서비스가 다양화되고 상향평준화 된 것도 반가워요. 한국에서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면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자부심은 더 커지죠. ‘와인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한국술도 절대 밀리지 않거든’ 그래서 지금이 우리술의 정의가 새롭게 이뤄질 때라고 생각해요. 힘들고 어려운 시절 밥상 위에서 시름을 달래줬던 술이 아니라,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화려하게 꽃피웠던 고급 문화로 인식된다면 우리술의 글로벌화는 물론 미래도 훨씬 밝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