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다시 깨닫는 머리끈 하나의 가치와 무게=
오늘 오전 사람을 만날 일이 있어,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물기 가득한 머리를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강바람에 말리기 위해, 풀어진 머리 그대로 나섰는데, 정작 버스가 올 무렵, 머리를 묶으려고 찾으니, 머리끈이 없다.
아무리 위아래 호주머니들을 뒤져보고, 버스를 기다리며 오갔던 강변 풀숲을, 몇 번을 뒤져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쑥대머리 봉두난발의 머리로, 읍내에 나가 일을 마친 뒤, 가게에 들려 난생처음 머리끈을 사서 묶었는데도, 영 개운치가 않았다.
마치 알 수가 없는 전혀 다른 불쾌한 무엇에 내 머리를 묶이고, 원하지 않는 뭔가가 내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마음이 언짢고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 팽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길 가운데, 애 터지게 찾았던 머리끈이 있었다.
드나드는 첫머리에 있어,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보는, 내 마음속 고귀한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 팽나무 그늘에 잃어버린 머리끈이 떨어져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읍내에 나가다 걸려온 전화를 받는 과정에서, 핸드폰에 묻어 나와 흘린 것이었다.
잃어버린 머리끈을 발견한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그 마음은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행여 바람이라도 불어 날려가 버리고, 혹 새라도 날아와서 물어 갈까봐, 얼른 머리끈을 주어들고 오는데.......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인연이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의 가치와 신뢰의 무게가, 사람에 따라서는 하늘을 채우는 크기가 되고 무게가 된다는 생각에, 머리끈 하나의 가치와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머리끈이나, 새로 산 머리끈이나, 한 개에 100원인 하찮은 검은 고무줄 머리끈 하나일 뿐인데, 머리끈의 가치가 하나는 고귀함으로, 또 하나는 천함으로 판이하게 다른 것은, 내 마음속에서 머리끈에게 두고 있는 의미와 가치,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의미가 다른 까닭이다.
지난 봄날 찾아온 아름다운 미인이, 어수선한 백발의 봉두난발로 사는, 초라하고 지저분한 홀아비의 머리를 보다 못해서, 자신의 머리끈을 풀어 묶어주고 간 뒤, 그날 이후 내 일생에서 처음 내 머리를 묶은 머리끈은, 내 마음속에서 유일한 머리끈이 되었고, 이 우주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가 없고 끊어지지도 않는, 더할 수 없는 최고 최상의 머리끈이 돼버린 까닭이었다.
본래 귀하고 천하다는 가치가 정해진 바가 없고, 저울질을 할 수가 없는 사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다른 까닭에, 만사와 만물은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사람마다 다르고 달라지는 것이라.......
처음 봄날에 찾아와서, 자신의 아름다운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 어수선한 내 쑥대머리를 묶어놓고 간 미인에게, 이 머리끈 하나는 별 것도 아닌 하찮은 것이지만, 뜻밖의 호의(好意)와 마음의 호사(好事)를 누린 나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소중한 물건이 되었듯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천금을 주고도 이 우주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고, 억만금을 준다 해도 팔수가 없는 사람의 마음, 즉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사람에게 전하고,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와 무게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머리끈 하나를 통해서 새삼 다시 깨달으며, 실감하고 있는 오늘이다.
창문 밖에 붉은 장미꽃들이 만발하여, 꽃향기 향기로운 초여름 날 오후, 지난 봄날에 찾아와서, 자신의 머리끈을 풀어 봉두난발의 내 늙은 머리를 묶어주고 가버린, 아름다운 미인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마도 오늘 다시 찾은 한 개의 머리끈은, 날마다 몇 번씩 머리를 묶는 내 손끝에서, 닳아지고 낡아지다 마침내는 삭아서 사라져버리겠지만,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머리끈은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는 것, 그것을 그 마음을 오후 햇살에 붉은 빛을 더하고 있는, 창문 밖 아름다운 장미꽃에게 전한다.
부정부패 없는 참 맑은 세상을 위하여
2017년 6월 2일 섬진강에서 박혜범 씀
사진설명 :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지난 봄날 아름다운 미인이 내 머리를 묶은 머리끈과 내가 고귀한 뜻을 지키는 의미로 사랑하며 사는 팽나무와 그리고 창문 밖에서 만발한 장미꽃이다.